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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활 건 정치 투쟁의 장, 번역
2019-02-01 07:09:21 104
사활 건 정치 투쟁의 장, 번역



해방~60년대 한국 번역사 연구
반공·국가주의의 전파 도구이자
저항 담론의 전초기지 역할했던
한국 현대번역사의 단면 보여줘


번역의 시대, 번역의 문화정치 1945~1969
-냉전 지(知)의 형성과 저항담론의 재구축
박지영 지음/소명출판·3만1000원
번역은 세계를 내다보는 창이다. 이 창이 세계를 언제나 투명하고 바르게 보여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창은 오역과 졸역, 중역 등으로 자주 일그러졌으며, 정치적 의도에 의해 왜곡된 세계상을 보여주는 때가 더 많았다. 그럼에도 번역은 분명 우리의 인식 세계를 구성하고,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번역의 시대, 번역의 문화정치 1945~1969>는 박지영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원이 현대 번역의 많은 부분을 형성한 1945년 해방 이후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현대지성사를 ‘번역’을 중심으로 설명해보려는 흔치 않은 연구의 결과물이다.
해방 직후부터 단독정부 수립까지 3년여의 짧은 시기는 억눌렸던 지식 욕구가 폭발한 해방구이자 치열한 이념의 각축장이었다. 번역은 미-소 군사당국의 이념적 선전활동이면서, 동시에 당대 지식인들이 직접 하기 어려운 정치적 진술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했다. 당시의 전반적인 사상 지형을 반영하듯 좌파의 시각을 담은 출판물이 양에서 우세했다. 단행본에는 마르크스,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등 좌파 원전 번역이 성황이었다. 잡지에도 에드거 스노 등 소련과 중국 혁명에 우호적인 당대 저널리스트들의 글이 더 많이 번역되었다. 하지만 1948년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여순사건, 제주 4·3사건 이후 반공주의 국가 이념에 의해 번역은 단일한 방향으로 수렴된다. 한국전쟁 이후 1950년대의 번역은 지식인들의 의식이 서구중심주의, 자유주의, 반공주의 중심으로 형성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엔 미 공보원과 원조단체, 문교부가 기획해 번역하는 책들이 이런 역할을 수행했다.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문명비평가 허버트 조지 웰스 같은 자유주의적 진보 지식인들은 함석헌 같은 저항적 지식인들의 인식체계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는데, 이들의 저서마저도 반공주의·국가주의의 자장 안에 있는 것만이 선별적으로 번역될 정도였다.
(왼쪽부터) 카를 마르크스, 버트런드 러셀, 장폴 사르트르는 해방 이후 1950~1960년대 국내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번역된 대표적인 사상가였다. 출처 <한겨레> 자료 사진, 위키미디어
(왼쪽부터) 카를 마르크스, 버트런드 러셀, 장폴 사르트르는 해방 이후 1950~1960년대 국내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번역된 대표적인 사상가였다. 출처 <한겨레> 자료 사진, 위키미디어
지은이는 이런 단선적인 수렴에서 최근에 나타나는 ‘인문학의 위기’의 근원을 본다. “한국을 하부 위성국으로 재편하려는 미국의 정치적 의도와 자의식을 상실하고 무분별하게 서구식 선진국을 추종했던 후진국 한국 지식계의 욕망이 만나, 성급하게 기획된 인문학 번역 정책의 허술함과 경직성이 한국 인문학계의 기반을 빈약하게 만들었다.”
1960년대도 이 같은 냉전적 지식담론의 큰 틀은 바뀌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특히 친미·반공적이던 <사상계>는 1963년 박정희가 민정이양 약속을 저버린 이후 저항적 매체로 방향을 선회한다. 그러면서 갤브레이스와 뮈르달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과 좌파 성향의 찰스 라이트 밀스 같은 이들의 글을 번역해 실으며 정부 비판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런 1950~1960년대 번역의 변화상을 한몸에 보여주는 것이 바로 장폴 사르트르 번역이다. 마르크스주의자이면서 후기엔 소련을 비판하기도 하고,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라는 사르트르의 다양한 면모는 국면마다 필요에 따라 취사선택돼 번역된다. 해방 직후에 사르트르는 번역자의 이념 성향에 따라 공산주의자로 또는 부르주아 지식인으로 비난받았다.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이후엔 공산주의자였던 사르트르의 좌파적 면모는 교묘하게 삭제되어 번역된다. 1960년 4·19혁명 직후에 잠시 <유물론과 혁명>, <변증법적 이성비판> 같은 마르크스주의 저작들이 번역되지만, 곧 반공주의 논리로 포섭되어 오역된다. 사르트르가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소련을 비판한 점은 간과하고, 1960년대엔 소련을 비판하는 ‘전향’ 대목만 선별적으로 번역돼 반공주의 텍스트로 활용되는 식이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창작과비평>에서 ‘반소비에트 좌파’라는 당대 가장 전위적인 사상가로서 부활한다. 사르트르의 사회비평 텍스트들은 1966년 창간호를 비롯해 <창작과비평>에서 비판적 지성의 이념적 토대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 문학평론가 염무웅이 <창작과비평>의 이념적 변모 과정을 “사르트르라는 외국 이론가에게 젖줄을 대고 있던 비평적 상태로부터 1970년대 이후 우리 토양으로부터 생겨나는 민족문학론으로 전환, 발전하는 과정에서의 이론적 성숙 과정”이라고 요약했을 정도다.
특히 <창작과비평>은 4·19세대 번역가의 탄생을 보여주는 지식장이기도 했다. 백낙청·리영희·박현채와 같은 <창작과비평>의 비평가들은 혁명 체험으로 인한 사회적 소명 의식과 함께, 뛰어난 외국어 능력을 바탕으로 번역할 텍스트를 주체적으로 선택한 번역가들이기도 했다. 특히 1977년 출간돼 2달 만에 금서가 된 <8억인과의 대화>는 편역자 리영희와 <창작과비평>에 고난을 안겨준 저서이면서 동시에 억압의 시대에 저항하는 정치적인 번역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박 연구원은 현대한국지성사에서 번역의 위치를 이렇게 요약한다. “번역은 당대 인식장 내외부에서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는 매우 역동적인 정치적인 행위였다. 어느 시기에나 누가, 누구를 위해 번역을 하는가는 늘 새롭게 지식장을 구축하고자 했던 주체들에게는 사활을 걸 만큼 중대한 문제였다.” 이 책은 논문집인 만큼 특정 주체들에 주목하는 연구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 분야의 연구가 축적돼 번듯한 ‘한국현대번역사’를 손에 쥘 수 있게 되길 기대해본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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