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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번역한 '어린왕자' 다시 번역하며 알게 된 것
2020-08-03 10:18:01 16
40년 전 번역한 '어린왕자' 다시 번역하며 알게 된 것

[인터뷰] 생텍쥐페리 탄생 120주년 기념 <어린 왕자: 0629 에디션> 번역한 전성자 선생
20.07.30 13:19l최종 업데이트 20.07.30 13:19l이효미(afterworkbooks)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뭘까?' 서른을 지나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향하면서 내 머릿속에 맴돌던 질문이었다. 먼저 내 주변의 어른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훌륭한 분들이 많았지만 그분들의 삶이 내게 뚜렷한 답을 주지는 못했다.

머지않아 좋은 어른의 모델을 찾아 헤매는 일은 그만두고 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좋은 책에 담긴 문장 한 줄, 아름다운 음악의 선율 한 자락, 누군가 내게 건네는 애정 어린 한 마디, 자연이 그려내는 풍경과 좋은 그림이 주는 감동을 마음에 차곡차곡 쌓아 내가 좋은 어른이 되는 데 밑거름이 되게 하자고.

마음이 답답할 때면 서점에 갔다. 무수한 책들에 둘러싸여 걷다 보면 동서고금의 수많은 어른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날 산뜻한 표지를 입은 책 한 권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린 왕자: 0629 에디션>(문예출판사, 2020)이었다. 어린 시절 <어린 왕자>를 읽었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문득 궁금해졌다. 어른이 되어 읽는 <어린 왕자>는 어떨까?

분명 달랐다. 어린 왕자가 여러 행성을 여행하며 만난 다양한 어른들의 모습은 내게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어린 시절엔 읽지 않았던 '옮긴이의 글'도 읽었다. 나를 <어린 왕자>의 세계로 다정하고 친절하게 이끌어준 사람은 30대에 <어린 왕자>를 번역하고 약 40년 만에 새롭게 번역한 원로 불문학자 전성자 선생이었다. 70대가 되어 <어린 왕자>를 다시 읽고 옮기면서 선생님은 무얼 느끼셨을까?

7월 말 아침, 한여름 무더위는 시작됐지만 고맙게도 선선한 바람이 이따금 불어오는 서울 성동구 서울숲에서 전성자 선생을 만났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주는 <어린 왕자>

- <어린 왕자>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과 영감, 깨달음을 주는 책이라고들 합니다. 저희 어머니는 예전에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땐 선문답 같은 철학적 대화가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읽을 땐 동화가 지닌 따뜻함과 섬세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고 하더군요. 약 40년 만에 <어린 왕자>를 다시 번역하면서 선생님께는 어떤 부분이 새롭게 다가오던가요?
"우리가 <어린 왕자>를 흔히 동화라고 하지만 굉장히 심오한 작품이죠. 이렇게도 해석이 되고, 저렇게도 해석이 가능한. 그래서 어린애들도 이 작품을 읽고 자기 나름대로 이해했다고 할 것이고, 읽는 사람의 지적 수준이나 개인적 체험에 따라서 다양한 감상이 가능하죠. 그렇게 희한하게 열려 있는 글이라 읽을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게 아닐까요?

제가 이번에 새롭게 발견한 것은 화자가 작품 안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어린 왕자의 내면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화자는 자기 내면에 대해 꽤 많은 걸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지요. '화자가 숨어 있는 주인공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하게 돼요. 화자가 살고 있는 곳은 현실 세계이죠. 어린 왕자는 별들을 드나들고, 동물들과 얘기하고,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동화의 세계에 있고요. 화자의 현실 세계와 어린 왕자의 동화 같은 세계가 서로 맞물리면서 독특한 구조와 감동을 만들어내요."

- 선생님의 그런 발견이 번역에도 반영된 걸까요? 저도 어렸을 때 읽은 기억으로는 '화자가 있었나?' 싶었는데 이번엔 확실히 화자에게 이입해 읽었거든요. 제가 어른이 된 탓도 있을 테지요.(웃음) 40년 전 독자와 지금의 독자는 매우 다를 겁니다. 번역하시면서 혹 마음속에 떠올린 독자가 있나요?
"중학생 정도의 아이들. 우리 손주도 그 또래이지만 요즘 세상은 <어린 왕자>에서 그려지는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세상이잖아요. 그게 굉장히 염려스럽다고 할까요? 세상이 흘러가는 모습, 전 지구적인 진행 방향을 보고 있자면 두렵고 걱정스러워요. 아이들이 <어린 왕자>를 일찌감치 읽어서 이 작품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내면화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린 왕자>에서 비판하는 현대인의 모습들이 있잖아요. 혹성에 사는 왕, 허영심 많은 사람, 주정뱅이 술꾼, 사업가 등. 그런 모습을 경계하고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한편으로 걱정되는 건 이 세상의 압력이 너무나 세서 과연 이런 이야기가 어필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 의구심이 들기도 하죠. 지금 세대는 너무나 자극적인 것들에 길들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조금 더 어린 층으로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어릴 때 들은 이야기가 일생 동안 강한 메시지로 각인돼 지속되기도 하잖아요. 요즘 세태에 대한 그런 염려와 바람을 담았고, 손주에게 읽어주는 할머니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습니다."

생텍쥐페리의 분신, '어린 왕자'를 통해 그리는 세계

- <어린 왕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무엇인가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지'라는 어린 왕자의 말이 떠오릅니다.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문장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이미지 자체로 매우 아름답기도 하고, 또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하는 커다란 상징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겠죠.

여러 가지 뜻으로 해석되지만 인생, 혹은 인간 속에는 당장 눈에 보이진 않지만 빛나는 그 무엇이 숨어 있고, 절실한 바람으로 찾아 나선다면 그것이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 인생, 인간은 아름답다는 믿음을 주고, 그것이 위로와 감동으로 다가오지요.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는 샘을 찾아 사막을 걷는 도중 화자가 잠든 어린 왕자를 두 팔로 안고 걸으며 감동하는 장면을 꼽고 싶어요. 어린 왕자와 화자의 완전한 교감은, 이 작품에서 말하는 바람직한 관계 맺음의 정수를 보여주지요. 또 평전 등을 통해 작가의 개인사를 좀 아는 저는 그 장면에서 생텍쥐페리의 짙은 개인적 고뇌와 열망을 느꼈어요.

갈등으로 얼룩진 아내 콘수엘로와의 관계를 이상적 관계로 만들려는 절박한 염원, 어린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한없이 자애로운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은 절절한 욕망이 그 속에 뜨겁게 녹아 있다고 느꼈어요. 어린 왕자가 작가의 분신임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죠."



- <어린 왕자: 0629 에디션>은 여러모로 특별해 보입니다. 단정한 흰색 양장 표지와 본문에 실린 생텍쥐페리의 삽화는 클래식한 느낌 그대로이지만 생텍쥐페리 탄생 120주년을 기념해 생텍쥐페리의 탄생일인 6월 29일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겉표지가 무척 독특합니다.
"색감이 산뜻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전 세계 <어린 왕자> 판본을 다 모아두더라도 눈에 띌 것 같아요. 또 어린 왕자가 생텍쥐페리의 분신이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제까지의 표지들은 어린 왕자만을 강조했잖아요. 그런데 어린 왕자가 생텍쥐페리의 분신이라면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의 분신이다, 어린 왕자를 낳은 이 사람을 강조하는 것도 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조금 더 나아가면 육체를 지녔던 현실의 존재는 사라졌어도 그의 정신과 영혼의 산물인 어린 왕자는 영원히 그의 분신으로서 남죠. 이 겉표지와 속표지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 고 황현산 선생님께서 과거 트위터에 '<어린 왕자>는 전성자 선생 번역이 좋다'는 글을 올려주셨습니다. 선생님은 번역도 하셨지만 오랜 시간 교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치셨지요. 프랑스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어떤 점에 신경을 쓰시나요? 또 약 40년 만에 새롭게 <어린 왕자>를 번역하면서는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셨나요?
"고 황현산 선생은 훌륭한 번역가이자 평론가, 작가로 잘 알고 있죠. 오래전 학회에서 뵌 기억도 있지만 특별한 인연이랄 것은 없고. 제 번역을 칭찬하셨다니 부끄럽네요. 그분이 번역한 <어린 왕자>를 봤는데 역시 좋더군요. 이번에 번역하면서 '아, 이런 대목은 좀 답답한데. 전화라도 한번 해서 얘기를 나눠보면 딱 좋겠다' 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친분은 없지만 전화 드린다고 싫어할 분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럴 수 없으니 안타까웠죠.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나셨어요.

프랑스어에서는 주어가 생략되는 법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말은 주어가 없는 문장이 너무나 많죠. 일단 우리말답게 옮기려면 주어를 많이 빼야 해요.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 주어를 빼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언어가 사고 체계를 반영한다고 하잖아요. 주어가 강조된다는 것은 결국 서구의 뿌리 깊은 개인주의 영향도 있지 않나 싶어요. 번역할 때 늘 부딪히는 문제가 있어요. 전혀 다른 새로운 문화를 그대로 소개할 것인가, 아니면 매끄러운 우리말로 바꾸어 이해를 높일 것인가를 선택하는 게 늘 고민이에요.

오래전에 했던 <어린 왕자> 번역을 다시 읽어 보며 많이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그 부끄러움을 덜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능력의 한계가 여기저기 드러나 있을 테지요. 그래도 정성을 다했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으려 합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할 때면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어보지 않는다. "그 애 목소리는 어떻지? 그 앤 어떤 놀이를 좋아하니? 나비를 수집하니?"라는 말들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묻는다. "그 앤 몇 살이니? 형제는 몇이고? 몸무게는? 아버지 수입은 얼마니?" 그제야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왜 지금, <어린 왕자>인가?

- 소설가 김영하는 같은 책을 시간을 두고 여러 번 읽는 독서법을 추천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책에서 새로운 것을 느끼고 발견하지 못한 것을 읽을 수 있다면서요. 저도 최근 들어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터라 <어린 왕자>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어른이 되어 <어린 왕자>를 다시 읽는 20, 30대 독자에게 이 작품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사회가 정해놓은 교육과정, 시스템을 따라가다가 20, 30대가 되면 이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서 자기 인생을 그려나가야 하잖아요. 좀 더 현실적으로는 어떤 형식으로든 사회에 편입돼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죠. 그래서 굉장히 두렵기도 하고 또 한편 설레기도 한 시점이지요. 그런 사람들이 <어린 왕자>를 읽었을 때, '나는 어린 시절과 작별하고 가혹한 현실로 뛰어들어야 하는데, 현실에서는 이런 순수함이 통하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한다면 그건 어떤 점에서는 오류를 범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 책을 번역하면서 '어린이의 순수함이라는 게 과연 뭘까?'를 계속 생각했어요. 생텍쥐페리는 어린이의 순수함을 찬양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정해진 체계 안에서 교육받으면서 어릴 때 가지고 있던 직관력, 상상력을 많이 잃어버려요. 어떤 틀에 박혀서 사고하게 된단 말이에요. 거기서 벗어나는 것에서 창의성이 시작되죠. 이 시대의 화두는 창의성이고 남다른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죠, 모든 방면에서. 그런데 창의성은 바로 어린 시절의 기존 관념에, 틀에 굳어지지 않은 순수함과 상상력, 자유로움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그런 순수함을 간직할 수 있는가. <어린 왕자>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민감성을 강조해요.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을 잃어버린 어른들, 나이 들며 감성이 굳어진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을 간직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꾸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은 내면을 정화하고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이니까요."
 
"우선 내게서 좀 떨어져서 이렇게 풀숲에 앉아 있어. 난 너를 곁눈질해볼 거야. 넌 아무 말도 하지 말아. 말은 오해의 근원이지. 그래도 날마다 넌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앉을 수 있게 될 거야."

-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쓴 때는 자본주의가 극으로 발달하고 대공황과 참혹한 전쟁을 겪던 시기입니다. '숫자'와 '어른' 혹은 '사막'과 '여우' 등 각종 상징을 통해서 자본주의 시대 인간성 소외와 파멸 혹은 순수함과 연대의 가치 등을 생각해보게 하지요. 그런 점에서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는 가운데 혐오와 차별, 인간 소외 문제가 대두되는 지금의 상황에 <어린 왕자>가 더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 현대인들은 왜 <어린 왕자>를 읽어야 할까요?
"혐오가 왜 그렇게 우리 사회를 지배하게 됐는지 걱정스럽고 슬픈 일이죠. <어린 왕자>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메시지는 결국 타자에 대한 사랑이잖아요. 타자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공을 들이고 책임을 지는 것. 지금 그런 가치가 사라지다 못해 혐오로 발전한 것은 기가 막힌 노릇이죠. 그래서 이런 세상에, 이런 메시지가 과연 귀에 들어오기나 할까 하는 비관을 하게 되기도 해요.

이 작품은 '여우와 어린 왕자' 혹은 '장미와 어린 왕자'처럼 언뜻 일대일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인간에 대한 애정, 연대 의식, 전부 다 하나의 관계망으로 얽혀 있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어요. 생텍쥐페리는 전쟁과 혼란한 시기를 살아가면서 정신적 가치, 평화와 인간에 대한 사랑을 추구한 사람이니까요.

요즘은 소통을 강조하잖아요. 인터넷과 SNS를 통한 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지는데, 물론 그런 소통 방식의 장점도 있겠지만 저는 회의적이에요. 너무나 빠르고 간단하며 일시적인, 깊은 생각이 없이 진행되는 소통이죠.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해서 비대면 소통이 점점 많아지는데 마치 그것이 더 좋은 소통 방식처럼 여겨질까 걱정도 됩니다. <어린 왕자>에서 여우는 멀찍이 떨어져 말없이 한참 쳐다보라고 하잖아요. 말은 오해의 근원이라고도 하죠. 일순간에 마구 쏟아내는 말들, 가뜩이나 오해를 만들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공격적인 말이 오가는 요즘 세태를 볼 때 많은 시사를 던져주는 것 같아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등에 함께 게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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