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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번역 외도’… ‘서사의 힘’을 충전하다
2020-09-01 10:38:29 53
소설가의 ‘번역 외도’… ‘서사의 힘’을 충전하다
 

■ 하루키부터 백수린까지… 그들은 왜 번역을 하는가

佛작가 뒤라스의 ‘여름비’ 옮긴 백수린…희곡적 특징·감각적 문체 등 매력
배수아, 리스펙토르 ‘G.H.에 따른 수난’ … 난해한 문장 “女목소리로 울리는 최상의 언어”
과거 김영하·김연수도 ‘위대한 개츠비’·‘대성당’ 번역으로 눈길
日 하루키는 “아침엔 소설쓰고, 오후엔 번역하며 피로 풀어”

최근 출간된 해외 소설 표지에 낯익은 두 이름이 보인다. 소설가 백수린과 배수아. 각각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여름비’(창비)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G.H.에 따른 수난’(봄날의책)을 번역했다.

두 사람이 외국 작가의 책을 번역하는 건 처음은 아니다. 배수아는 프란츠 카프카, 로베르트 발저, W G 제발트 등의 작품을 우리 말로 옮기며, 탁월한 번역가로 인정받고 있다. 백수린 역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을 번역해 호평받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 번역은 전위적이고 도발적인 ‘여성의 목소리’가 국내 대표 여성 작가들에 의해 옮겨진 것이기에, 좀 더 의미가 깊다. 더욱이, 최근 국내 문학계에선 ‘여성 서사’가 가장 큰 힘을 발휘하고 있지 않나. 백수린이 뒤라스를, 배수아가 리스펙토르를 만난 건, 그래서 소설가의 겸업 그 이상의 일이 된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가 레이먼드 챈들러와 레이먼드 카버를 꾸준히 일본어로 옮기며 이들을 스승, 동료, 동행인 삼아 ‘창작자의 삶’을 더 풍요롭게 가꿔온 것처럼.

소설가의 번역으로 가장 ‘즐거운’ 건 독자다. 작가는 대개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번역한다. 이는 양질의 번역을 가능케 하는 힘이다. 하루키는 “훌륭한 번역에 필요한 건 편파적인 사랑”이라고 했고, 그 ‘사랑’ 덕에 독자들은 보다 감각적이고 매끄러운 해외 작품을 만난다. ‘난해함의 극치’라고까지 하는 뒤라스와 리스펙토르를 기꺼이 읽어보겠노라는 ‘의지’를 다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남다른 통찰과 해석이 담긴, 소설가이기에 가능한 ‘옮긴이의 말’도 독서 경험을 넓혀준다.

‘여름비’는 1988년 혼수상태에 빠진 뒤라스가 4개월 만에 극적으로 깨어나, 1971년 출간한 동화 ‘아! 에르네스토’와 영화 ‘아이들’을 다시 확장해 쓴 소설이다.

백수린의 번역을 통해 재탄생한 뒤라스의 ‘여름비’는 희곡적인 특징과 시에 가까운 감각적인 문체 등 원문의 매력이 잘 살아있다. 백수린은 프랑스문학을 전공하고, 시몬 드 보부아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무엇보다 뒤라스를 오랜 시간 사랑해 왔다. 이 번역이 미더울 수밖에 없다. 그는 뒤라스에 대해 “내가 사랑하는 프랑스 작가를 꼽을 때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름 중 하나였다”고 ‘옮긴이의 말’을 통해 말했다.

또,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주는 뒤라스의 문장들에 대한 감상도 밝힌다. “나는 종종 번역을 하다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며 탄식하곤 했다. 아,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을 어떻게 다른 언어로 번역한단 말인가.” “슬프고도 부드럽고, 황량하다가 따스하기도 한 뒤라스의 문장들이 내가 번역한 문장들과 얼마나 닮아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배수아의 문체로 새롭게 만나는 리스펙토르는 종종 버지니아 울프 혹은 카프카에 비견되는 인물이다. 1964년 출간된 대표작 ‘G.H.에 따른 수난’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의 목소리로 이뤄졌다. 읽는 내내 그 이름조차 알기 어렵다. G. H.가 여성이고, 한때 조각가였으며 리우데자네이루에 혼자 산다는 것 정도다. 옮긴이는 이 낯선 독서 경험에 대해 “문학사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작품 목록이 있다면 그 상위에 오를 것”이라며,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떠올릴 강렬한 몇몇 경험 중 하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배수아는 오랜 시간 ‘나의 작가’를 찾아 헤맸고, 그가 여성이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은 리스펙토르가 됐다. “여성의 목소리로 울리는 최상의 언어와 그것을 옮기는 일을 다른 무엇보다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이 언어는 여성이다!’라고 생각한 책들은 많지 않은데, 리스펙토르의 글, 그리고 특히 이 책 ‘G.H.에 따른 수난’이 거기에 속한다.”

백수린과 배수아 이외에, 번역‘도’ 잘하는 소설가들은 계속 있었다. 이들은 세대를 달리하며, 그 흐름을 이어오고 있는데, 초기 문학 수련과 생계를 위한 것에서 점차 새로운 번역, 출판 마케팅의 필요성에 의한 것으로 변모, 발전해갔다. 대표적인 작가가 외국어 실력뿐 아니라 두꺼운 독자층, 대중적 인지도를 확보한 김영하와 김연수다. 김영하는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김연수는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이상 문학동네)을 번역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김연수는 소설가가 되기 전부터 번역을 해왔고, 번역하며 보낸 청춘의 시간에 대한 소회를 종종 산문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이밖에 정영문, 한유주 등도 번역가를 겸하는 작가들이다.

해외에선 번역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철학을 설파해 온 하루키가 있다. 그는 아침에는 장편소설을 쓰고, 오후에는 번역하며 피로를 푼다는 망언(?)을 하기도 했는데, “소설 쓰는 일과 번역하는 일은 쓰는 머리의 부위가 달라서 번갈아 하다 보면 뇌의 균형이 좋아진다” “번역 작업은 늘 변함없이 소중한 글쓰기 스승이자 허물없는 문학 동인이기도 했다” 등의 어록으로도 유명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비채)에서는 아예 책의 절반 정도를 ‘번역 일’에 대한 생각을 밝히는 데 할애하기도 했다. 하루키는 ‘호밀밭의 파수꾼’ ‘위대한 개츠비’ 등 자신에게 영향을 줬으며, 그래서 일본어로 정말 잘 번역되길 원하는 책들에 정성을 쏟았다.

특히, 챈들러와 카버의 작품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는 2년에 한 번꼴로 챈들러의 책을 번역하는데, “이미 취미 활동으로 굳어졌다”고 했다. 또 카버에 대해서는 “거의 평생의 업이 됐다”고 할 정도로 각별함을 표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한국고전번역원, 미출간 누적 원고 333권
40년 전 번역한 '어린왕자' 다시 번역하며 알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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