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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번역은 번역이며 번역이고 번역이다
2023-09-01 08:54:53 103

등록 2023-09-01 05:00

임인택 기자

10여년 한국문학 세계화 기여한
번역·번역가의 시대 집중조명


작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2016년 맨 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을 받은 영국 번역자 데버라 스미스. 유수의 국제문학·번역상 수상과 함께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물론 번역의 가치가 크게 주목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원전 중심주의’와 ‘창조적 번역’ 사이 논쟁도 폭발시켰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작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번역으로 2016년 맨 부커상(인터내셔널 부문)을 받은 영국 번역자 데버라 스미스. 유수의 국제문학·번역상 수상과 함께 한국문학의 세계화는 물론 번역의 가치가 크게 주목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원전 중심주의’와 ‘창조적 번역’ 사이 논쟁도 폭발시켰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번역과 번역가가 지금처럼 조명된 적은 없다. 한국문학의 지평이 넓어지고, 부커상(소설 ‘채식주의자’), 대거상(SF ‘밤의 여행자들’), 전미번역상(시집 ‘히스테리아’) 등 유수의 국제 문학·번역상을 수상한 덕분이다.
최근 인터뷰 전문 작가 은유는 한국 시를 주로 번역하는 7명의 젊은 번역가와의 대담을 책(‘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읻다)으로 냈다. 이 책이 번역가들에 대한 다감한 환대라면, 신간 ‘K 문학의 탄생’은 번역시대에 대한 대담한 환대일 것이다. ‘원전 중심주의’에 견줘, ‘창조적 번역’의 의미와 필요성을 상당 대변하기 때문이다. 그로 하여금 지금의-누군가는 오그라들지언정-‘K 문학’이 가능했다고 본다.

‘K 문학의 탄생’이 작가나 번역가, 출판인들에게만 흥미로울 이유는 없다. 모든 독자는 그 모국어의 번역자 아닌가. 그렇다, “번역되지 않은 작품은 절반쯤 쓰인 것에 불과하다.”(프랑스 철학자 에르네스트 르낭)
영국 출신 영문학자 안선재 단국대 석좌교수가 개관한 한국문학 번역사부터 보자. 한국문학 작품을 최초 번역한 이는 캐나다 선교사 제임스 스카스 게일(1863~1937)로 1895년까지 거슬러 간다. 짧은 시 한편이었다고 한다. 해방 이전 가장 체계적 영어사전으로 평가받는 ‘한영대자전’(1896)을 그가 펴내기 몇달 전이다. 1913년 민담, 1917~18년 ‘춘향’(원전은 이해조의 ‘옥중화’), 1922년 ‘구운몽’, 1930년경 이규보의 시를 또 번역했다. 안 교수는 “사소한 예외를 둔다면 1971년까지 외국인이 번역한 한국문학 책이 한 권도 없었다는 점”을 “가장 중요하게 지적하고자 한다.” 변방 중 변방의 한국문학이 세계화하는 여정에서의 첫 변곡점에 안 교수는 2011년 미국 크노프 출판사가 출간한 ‘Please Look After Mom’(엄마를 부탁해, 신경숙)을 둔다. 교육자료 용도의 해외 대학출판부 중심 번역 소개를 탈피해, 상업 출판사가 여느 소설처럼 대량 배포, 홍보 과정을 밟은 최초 국내 작품이란 점을 든다. (당시 번역가가 천명관 작가의 ‘고래’를 번역해 2023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김지영씨다.)

두번째 변속은 말할 것도 없이 ‘채식주의자’의 2016년 맨 부커상 수상이다. 게다 번역과 원전의 적정 거리에 대한 논쟁을 폭발시켰다. 안선재 교수는 당시 오역 논란을 “까다로운 한국인들이 자유로운 혹은 부정확한 번역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란”으로 말하지만, 국제적 호명을 통해 한국문학의 번역이 당면해야 할 과제를 가장 속성·집약적으로, 말하자면 가장 한국식으로 관통했다고도 할 수 있다. 압축 성장기다.
소설 ‘채식주의자’의 맨 부커상 수상은 번역과 원전의 적정 거리에 대한 논쟁을 폭발시키기도 했다. 번역자 데버라 스미스(왼쪽)와 작가 한강. ‘원작을 제멋대로 썼다’는 비판 뒤 서서히 ‘영어 사용자들을 위한 재탄생’이라거나 젠더 측면에서의 ‘저항적 번역’이라든가의 옹호론이 뒤따랐다. EPA 연합뉴스
소설 ‘채식주의자’의 맨 부커상 수상은 번역과 원전의 적정 거리에 대한 논쟁을 폭발시키기도 했다. 번역자 데버라 스미스(왼쪽)와 작가 한강. ‘원작을 제멋대로 썼다’는 비판 뒤 서서히 ‘영어 사용자들을 위한 재탄생’이라거나 젠더 측면에서의 ‘저항적 번역’이라든가의 옹호론이 뒤따랐다. EPA 연합뉴스
출발어 원전에 밀착한 번역(충실성)이냐, 도착어 현지에 근접한 번역(창조성)이냐를 두고 서구에서 논쟁 학습한 시간은 이미 길다. “가장 서툰 직역이 가장 멋진 의역보다 천배는 더 유익하다”던 러시아 출신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와 “박제된 독수리보다는 살아 있는 참새”가 낫다며 악명 높은 ‘자유 번역’을 직접 시현하던 영국 시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1809~1883)의 사례는 일각들일 뿐이다.
근 10년 한국문학 작품을 번역하며 고뇌한 이들의 직접 경험담은 그런 맥락에서 각별하다. ‘작가의 말’과 작가상 등을 통해 드러나는 창작자의 산통만큼, 때로 그 너머를 무대 아래에서 감당 중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번역에 대한 애도에서 번역의 행복이 생겨난다”는 폴 리쾨르의 말(‘번역에 관하여’)처럼 완벽한 번역이란 애초 불가능하거니와 이 책의 프롤로그(조의연 동국대 영문학부 교수)대로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번역가는 원작자의 그늘에 가려져 빛을 보기 쉽지 않으며 간혹 오역이라도 있으면 …책임져야 한다.”
안 교수의 개론 밖에서 한국작품 세계화의 결정타로 ‘82년생 김지영’이 빠질 수 없다. 해외서 가장 많이 팔린 국내 문학작품이다. 82년생이라서 당초 ‘식은 죽 먹기’로 영어 번역을 시작했다는 제이미 장에게 막상 번역행위는 작품 속 보편화한 김지영 안팎의 개인 김지영들을 필시 만나야 했던, 그 대상엔 자신도 포함되기에 시종 “깨달음과 충격”을 피할 수 없던 고행이었다.
책에선 좋은 번역의 요건으로 공동작업이 두루 꼽힌다. 특히 시는 작가, 작품, 배경 등 (파라)텍스트에 대한 이해는 물론 단어와 의미, 소리와 감각까지 다른 언어로 재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역자와 원작자, 출발어와 도착어 전문가 사이 “맹렬하면서도 우호적으로 토론”이 전개된 집체적 과정은 로렌 알빈과 배수현의 글로 확인된다. 김혜순 시인의 시집 ‘한 잔의 붉은 거울’이 영문 번역되기까지의 ‘공정’을 보고서처럼 기록했다. 김혜순 특유의 ‘시쓰기’가 아닌 ‘시하기’, 여성의 발화 따위 한국적 배경 서사 등에 대한 탐구로 시작하여, 개별적 경험과 감각이 농축된 시어에 대한 대응까지 세세하다.
가령 2차 번역에선 구두점을 지운다. 원문에 없는 구두점이 영어의 문법적 필요로 추가될 때 시 본래의 어조, 행의 리듬을 해친다. 2019년 최종 출간 제목은 초고 ‘That Scarlet Cloud’에서 ‘That Red Cloud’로 바뀌어 있다. “의식적으로 화려한” 느낌을 덜기 위함이다.
영문 시는 “의미를 보존하는 것보다 시답게 읽히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전승희 교수(보스턴 칼리지 한국학)는 영어권 출판계 경우 “번역 문학에서 글의 흐름을 방해하는 각주”조차 “금물”이라며 “의역이나 심지어 오역이 있더라도 영어로 잘 읽히는 쪽을 선택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현지어 사용자의 번역을 더 선호하는 이유고, ‘채식주의자’가 답한 방식이며 국내서 논란이 된 배경이다. 번역된 외국 서적에 각주가 더 수월히 붙는 편이 한국어권의 특성이다. 전 교수는 이를 언어·문화 권력관계로만 해석하길 경계한다.
책의 여러 필자들은 전반으로 충실성과 엄밀성에 더 무게를 뒀던 지난 번역론으로부터 자유로워 보인다. 가령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를 오역 사례로 꼽았던 김욱동 서강대 교수를 언급하며, “원작자의 의도를 제법 잘 살려낸 번역”으로 달리 평가하는 정은귀 교수의 입장 차이만큼 둘 사이 거리는 엄연한 것이다.
어느 쪽에서든 충실성과 창조성을 배타적 관계로 보지 않는다. 정 교수 말마따나 “해석 자체가 비판적·창조적 행위”이다. 언어 숙련자의 완고한 ‘문법적 해석’이 번역일 수 없듯, ‘자기과시형 의역’ 또한 설 자리는 커 보이진 않는다. 번역의 윤리성을 실력 있는 번역가의 “겸손함”에 여러 필자들이 공히 수렴시키는 이유다.
거트루드 스타인은 시 ‘신성한 에밀리’에서 “A rose is a rose is a rose is a rose”라고 썼다. 번역되길 “장미는 장미이며 장미이고 장미다”. 원전에 충실한 번역이 때로 필요한 사례로 정 교수가 꼽았다. “해석적 개입”이 없었던 걸까. 장미는 하나의 장미로 해석되지 못한다는 게 시의 의중이며 해석일 것이다. 진짜 번역은 독자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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